‘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 한 낱말이 유럽의 화형대가 되기까지
원문에 없던 문장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추가된 구절 아님), 있던 낱말의 뜻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좁아지고 달라졌다. 히브리어 낱말의 정확한 뜻은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영어 번역이 그것을 당대 유럽에서 통용되던 특정한 인물상 하나로 못 박았다. 다만 '번역 선택'으로 볼 여지도 있어, 이 회차는 그 경계를 함께 다룬다.
한국어 성경은 메카셰파를 ‘무당’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위치’와 ‘소서리스’로 옮겼습니다. 같은 구절이 언어마다 겨냥하는 대상이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원문에 없던 문장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추가된 구절 아님), 있던 낱말의 뜻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좁아지고 달라졌다. 히브리어 낱말의 정확한 뜻은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영어 번역이 그것을 당대 유럽에서 통용되던 특정한 인물상 하나로 못 박았다. 다만 '번역 선택'으로 볼 여지도 있어, 이 회차는 그 경계를 함께 다룬다.
확인된 사실
이 채널은 확정·학계 통설·논쟁 중을 구분해 적습니다. 확정은 자료를 열면 바로 보이는 것, 학계 통설은 다수 학자가 그렇게 보는 것, 논쟁 중은 지금도 갈리는 것입니다.
- [확정] 히브리어 원문은 세 낱말뿐이다. 문제의 낱말은 메카셰파이고, 뒤에 '살려두지 말라'가 붙는다
- [확정] 메카셰파는 문법상 여성 단수형이다. 형태소 태그가 피엘 여성 단수 분사로 표시한다
- [확정] 명령을 받는 '너'는 남성 단수형이다
- [확정] 이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22장 17절이고, 영어·한국어 성경에서 22장 18절이다. 절 번호가 어긋나 있다
- [확정] 라틴어 불가타는 이 낱말을 남성 복수형으로 옮겼다. 여성 한 사람이 아니라 남자들을 포함한 여럿이 되었다
- [확정] 제네바 성경(1599)과 킹제임스 성경(1769)은 '위치(마녀)'로 옮겼다
- [확정] 영국개정역(1885)·미국표준역(1901)·세계영어성경(2020)은 '소서리스(여자 주술사)'로 바꾸었다. 영어 전통 안에서 한 번 정정된 것이다
- [확정] 개역한글은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찌니라'로 옮겼다
- [학계 통설] 칠십인역은 이 낱말을 파르마케이아 계열로 옮겼다. 이 그리스어는 약초를 다루는 사람, 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 [논쟁 중] 메카셰파의 정확한 뜻은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주술을 행하는 사람, 중얼거리는 사람, 약초를 자르고 다루는 사람 등 어근 해석이 갈린다
- [학계 통설] 1486년에 나온 마녀 재판 지침서 『말레피카룸의 망치』는 라틴어 낱말 말레피카룸에서 제목을 따왔다. 불가타가 이 구절에 쓴 낱말과 같은 계열이다
- [학계 통설] 이 구절은 15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마녀 재판에서 처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인용됐다
- [학계 통설] 1692년 세일럼 재판에서도 이 구절이 인용됐다
- [학계 통설] 함무라비 법전에도 해로운 주술을 행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고대 근동에서 이런 규정 자체는 드물지 않았다
역본은 이 자리를 어떻게 옮겼나
| 역본 | 연도 | 이 자리를 어떻게 옮겼나 |
|---|---|---|
|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 ||
| 칠십인역 | ||
| 라틴어 불가타 | ||
| 제네바 성경 | 1599 | |
| 킹제임스 성경 | 1611 | |
| 영국개정역 | 1885 | |
| 미국표준역 | 1901 | |
| 세계영어성경 | 2020 | |
| 개역한글 | 1961 |
이렇게 흘러왔다
- 기원전 3세기 — 칠십인역이 메카셰파를 파르마케이아 계열로 옮김
- 5세기 초 — 라틴어 불가타가 남성 복수 말레피코스로 옮김
- 1486 — 『말레피카룸의 망치』 출간 — 제목이 같은 라틴어 계열
- 1599 — 제네바 성경 영어판 '위치'
- 1611 — 킹제임스 성경 '위치' (본문 확인은 1769 개정판)
- 1692 — 세일럼 마녀 재판
- 1885 — 영국개정역이 '소서리스'로 바꿈 — 영어 전통 안의 정정
- 1961 — 개역한글 '무당'
참고 자료


자주 오해되는 자리
메카셰파 — 히브리어 원문의 낱말. 뜻이 확정되지 않았다
흔한 오해: '마녀'라고 단정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이 회차가 다루는 문제다
불가타의 낱말 — 말레피코스 — 남성 복수, '악을 행하는 자들'
흔한 오해: 여성형 / 마녀 — 라틴어 쪽에서 성과 수가 이미 바뀌었다
영어의 정정 — 1885년 영국개정역부터 '위치' → '소서리스'
흔한 오해: 영어 성경이 지금도 전부 '위치'라고 말하는 것
절 번호 — 히브리어 22:17 / 영어·한국어 22:18
흔한 오해: 히브리어 원문을 22:18에서 찾는 것
파르마케이아 — 칠십인역의 그리스어. 약초·독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흔한 오해: 곧바로 '마법'으로만 옮기는 것
이런 반론이 있습니다
번역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잔인했던 것이다. 낱말을 바꿔도 마녀사냥은 일어났을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이 구절이 마녀사냥을 만들었다고 말하면 지나치다. 재판 기록을 보면 이미 있던 공포와 이해관계가 먼저였고, 이 구절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자리에 놓였다. 다만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는 문장이 처형에 어떤 무게를 실었는지는 따로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 (학계 통설)
히브리어가 여성형이니 원문도 여성을 겨냥한 것이다
여성형인 것은 맞다. 그러나 히브리어 법조문은 한쪽 성으로 대표해 쓰는 일이 흔하고, 신명기 18장에는 같은 부류를 남성형으로도 열거한다. 여성형 하나로 '여성만 겨냥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논쟁 중)
'위치'가 그 시대 영어로는 정확한 번역이었다
이것이 가장 강한 반론이다. 1611년의 '위치'가 오늘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와 같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다만 1885년에 영어 전통 스스로 낱말을 바꿨다는 사실은, 적어도 뒤에 온 번역자들이 그 낱말을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음을 보여 준다. (논쟁 중)
한국에서는
개역한글은 '무당'으로 옮겼다. 한국에서 무당은 지금도 살아 있는 직업이고 이웃이다. 영어권에서 '위치'가 옛날 이야기 속 인물을 가리키는 것과 달리, 한국어 번역은 실재하는 사람들을 곧바로 가리킨다. 같은 구절이 언어에 따라 겨냥하는 대상이 달라진 셈이다.
근거로 삼은 본문·자료
- morphhb — Westminster Leningrad Codex (CC BY 4.0)
- Vulgata Clementina (la.wikisource.org)
- ebible.org — Geneva 1599 · KJV 1769 · RV 1885 · ASV 1901 · WEB 2020
- 개역한글판 (1961, 저작권 만료)
- Wikipedia: Thou shalt not suffer a witch to live
이 채널은 종교와 싸우려는 채널이 아닙니다. 신앙을 존중합니다. 모든 주장에 출처를 달고, 학계의 통설과 논쟁 중인 사안을 구분해 전합니다. 반론을 환영합니다 — 근거와 함께 알려 주시면 다음 회차에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