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여행의 시작 1

오래전 여행의 시작 1

그러니까 오래전 이야기가 될 듯하다.
이제 나에게도 오래전 이야기라는 것들이 제법 많이 생겼다.
그만큼 나이가 먹었다는 것일까.
반백년을 살았다는 말이 나에게도 찾아올지는 미처 생각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아마 1997년 11월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IMF 시국에 떠밀리듯이 취업을 했고, 경북 죽변이라는 시골 마을의
어느 식품 공장 제품 실험실에서 밤낮으로 실험을 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9시 출근, 02시 퇴근이 일상이었고,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 주말에도 출근해서 실험을 했던 터라 수당이 본봉보다 많았다.
본봉이 173만 원이었는데 수당과 3개월마다 주던 보너스까지 합치면 어떤 달은 500여 만 원을 더 받았던 적도 있었다.
이제야 그때 봉급을 추월한 월급으로 받고는 있지만… 그때가 많이 벌기는 했었나 보다.

여하튼 그렇게 나름 대학교 전공을 살려서 회사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컴퓨터라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왔다.

서울의 어느 회사에 취업을 했다.
컴캐스트라는 곳이었다. 첫 월급 76만 원.
그곳에서 6개월을 일하는 동안 죽변에서 벌어들였던 돈을 더 많이 사용한 듯하다.

나름 열심히 했었고, 기존 경력자들을 6개월 만에 가뿐히 즈려 밟을 만큼 난 앞서 나갔다.
적성이 맞았던 것일까.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튼 대학에서 전공으로 공부하고 같은 회사에서 나보다 두세 배 더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던 기존 같은 부서의 직원들보다 독보적으로 나는 잘했다. 자만심이 무르익을 무렵…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내가 이번에 회사를 하나 인수했는데 그곳에 가서 열심히 하면 인센티브에 사주도 줄 테니 나를 따라가자.”

경리 과장으로 있던 그 사람의 꼬임에 넘어갔다.
모 대형 콘도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고, 스키캠프를 시행하던 회사였었다.
기존 사장은 있었지만 그 경리 과장도 대표이사 직함을 가지고 함께 운영하던 회사.
나름 강남에 있어서 ‘난 벌써 출세길에 접어들었나?’라는 착각을 하고 있을 때 그 대표이사가 나를 불러서 살짝 제의를 한다.

“회사 자금이 갑자기 필요해서 그러는데 천만 원만 융통해주면 2달 뒤에 이자까지 해서 천오백만 원을 주겠다.”

당시 난 수중에 그런 큰 여유 자금은 없었지만 큰 부담감 없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덜컥 천만 원을 융통해준다.
차용 증명서 따위 어떤 증명서도 없이 말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두 달 뒤에 그대로 현실이 된다.
전화벨이 울린다.

“고객님~ 결제일이 지났네요.”

“고객님~ 안 갚으실 건가요?”

“여보세요~ 좋은 말 할 때 빨리 갚으시죠?”

그리고 불어나는 이자에 이자… 사채는 빌리지 않았지만 사채만큼이나 빨리 불어나는 연체이자.

끝내 정말로 사채를 빌리려 했지만 불발이 되고 난 하는 수 없이 작은형한테 전화를 돌린다.

그리고 수년째 만나지 않았던 고향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물론 이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그들의 수중엔 그만큼의 돈이 없다.
하지만 모두 십만 원, 이십만 원씩 빌려준다고 한다.
다 모아봐야 백 만원도 안 된다.

그 길로 그 회사를 나와 다른 회사에 다시 취업을 하고 1년여를 죽어라 갚아나간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회사 생활을 이어 나갔고 2004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때쯤 회사 이사와 대판 싸운다.
영업이사직함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냥 영업직 나부랭이쯤 되는 사람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화를 냈었고, 책상을 걷어 차고 나와버렸다.
청계천길 따라서 몇시간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 왜 사는 걸까?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냥 죽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냥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른 생각은 할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치타.

내 어릴쩍 꿈이였던 치타.
치타나 한번 보고 죽자 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하려면 아프리카를 가야한다고 생각을 한다.
곧바로 여행사를 검색하고 전화를 해보니 해외여행을 하려면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그날밤 모든 퇴근한 사무실에 들어가 짐을 싸고, 사직서를 대표 자리에 덩그런히 두고, 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타왔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여권을 만들고 항공권을 발급받는다.

2005년 1월 5일이었다.


빨간흙의 대륙 아프리카.
난 아프리카대륙 위를 날고 있었고, 케이프타운 공항을 나오고 있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