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텃밭 가꾸기의 전말

처음 집을 얻을때부터 집앞 주차장 옆에 2개의 고랑을 우리 텃밭으로 사용 할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2개의 고랑…두둑이라고 해도 사실 꽤나 많은걸 할수 있을것 같았다.그런데 레이를 세워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그 텃밭용 땅에 레이를 주차하기로 했었다.그리고 시골 생활의 꽃인 텃밭은 뒷마당 한켠에 일단 만들어보기로….ㅋㅋ ㅠㅠㅠ 하지만 뒷마당에 만들 텃밭용 자리는 돌이 한무더기였다.파도 파도 끝없이 나오는 돌.처리 곤란할 정도로 많이 나오던 돌.이전에 사시던 분은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돌들을 가져다가 온 집안에 그렇게 깔아두셨다.물론 비오고 해서 질척이니 그거 방지용으로 여기저기 깔아두신것 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정말 돌 치우느라 허리 아작 나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듯 하다. 우야튼 그렇게 뒷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상토용…

전원생활

뒷마당 정리후 나무테크 설치

뒷마당이 있었다.제법 넓은 뒷마당이었고, 김장용 장독 하나만 덩그런히 땅에 숨겨져 있었던 곳.비오면 질척여서 나가기 거시기 했던 곳.그곳을 어떻게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지붕이 있게 고쳐서 작업장이나 Bar를 만들까.아니면 돌담을 쌓아서 뭔가 해볼까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던차에 나무데크가 생각이 났다.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실행.손수 할수 있는지 알아보니 역시 그건 아닌걸로.업자를 알아밨다.470만원 부터 380만원까지.하…돈 들어갈곳이 한두곳이 아니다.그래도 일단 딸라빚을 얻어서라도 할건 해야지. 곧바로 그 주 주말에 작업!.처음엔 이틀 걸릴거라더니 그 전에 내가 이것저것 치워놓고 평탄화를 좀 해놓으니 일이 빨리 끝났다.대충 오후 6시경에 끝난듯 하다. 뒷 마당이 아주 깔끔해 졌다.토토도 좋다고 뛰어다닌다.태양광 전등을 다시 32개 더 주문해서 도착하자마 여기저기 놓는다.아주 이쁘다. 이렇게 또 하나의 공간이…

전원생활

잡초에게도 이름은 있을터

지난 양평 고로쇠 축젯날 뜬금없이 몇 송이 구매해서 왔던 튤립이 얼어 죽었나 싶었는데아직 그 탱탱함을 유지하고 있다.아니 그냥 그 얼었던것 그대로 아직도 얼어있나도 싶지만 아무튼 아직도 탱탱하게 굳건히 서 있다.새로운 잎사귀가 나오거나 꽃망울이 펴야 이녀석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수있겠다 ㅋㅋㅋ 그리고 앞마당 화단엔 이전에 사시던 할머니가 이것저것 많이 심어 놓으셨던듯 한데 그 꽃들이 이제 하나 둘씩 솟아나고 피어나기 시작했다. 노란 수선화가 무더기로 피어나기 시작했고, 이름 모름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잡초일수도 있겠지만….일단 꽃이 피면 그건 우리에게 더 이상 잡초가 아니다. ㅋㅋㅋ 옆집 리트리버가 우리집으로 넘어오는 사태를 맞딱들이고 부랴 부랴 쳐놓았던 울타리 덕분에 잊혀져 있던 뒷마당을 한껏 넓게 가꿀수 있게 되었다. 멋있는 소나무 한그루…

전원생활

앞마당 뒷마당 잡초 상황

비단 잡초라고 하기엔 하나 하나가 너무 소중하다.5월이 되야 꽃이 핀다는 염소집 할매의 조언을 들었어야 했다.양평….그중에서 단월은 아직 엄동설한이고 아침엔 서리가 빗발친다.혹시나 하고 꽃집에서 사왔던 튜립들은 활짝 핀채로 모조리 얼어 뒤졌고….각종 상큼 발랄 활짝이었던 꽃들도 모조리 황천길로 가셨다. 그간 불모지로 남아있었던 뒷마당에 옆집 리트리버가 넘어오는 당황스런 경우 땜에 쳤던 울타리로 인해 50여평도 넘는 땅을 되찾은 기분이다.이젠 뒷마당을 어떻게 꾸밀지도 생각해야할때다.아내는 그곳을 숨겨진 꽃밭으로 …후원….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우리만의 후원을 만들자 한다.돌계단도 이쁘게 만들고…자그마한 의자와 테이블도 만들자 한다.의자는 아름들이 소나무를 반으로 잘라서 다듬으면 될것 같고….테이블도 간벌하고 넘어져 있는 나무들 이용하면 될듯하다. 금/토/일 할일이 또 많다. 우야튼 앞/뒤마당에 잡초라고 불리우는 녀석들이 먼저 꽃망울을…

버섯

버섯은 이쁘다

지리산으로 생각된다. 어느 순간에 눈에 띄인 버섯. 어린시절 보았던 스머프가 생각났고 그때부터인가 버섯만 보면 연신 사진을 찍었다. 볼수록 너무 이쁘다 이름모를 것들이지만 모두가 다른 생김. 이름이라도 하나 제대로 아는 녀석들이 없지만 그냥 그런 데로 좋다. 언젠가 아무 생각없이 전국 방방곡곡 전세계 구석 구석 버섯이나 찍으러 다니면 좋겠다.

사진

어느 항구

그 시절엔 중선배 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처음 여수로 이사 나와서 한동안 타셨던 배. 한평도 안돼는 사방이 막힌 취침칸에서 발도 뻗지 못하시고 주무시며 일하시던 그런 시절. 무던히도 정말 일만 하셨던 아버지. 삼형제 벌리고 있는 입에 풀칠이라도 할라치면 아들내미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일만 하셨을지라. 지나고 나서 말하는거지만 그때가 좋았다.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라.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하시는 아버지의 고생이야 있던 말던 그걸 눈에 보지 않던 우리는 그때그 좋았더라. 이제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어렴풋이 아주 조금은 느낄수 있다. 아버지.